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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_ [멍텅구리], 경성 시내를 활보하다

글 | 박선영_고려대학교 연구교수. 1974년생
주요 논문 「한국 코미디영화 형성과정 연구」, 「식민시기 “웃음의 감각” 형성과 코미디(성)의 발현」 등
 
1925년 12월 28일, 경성 시내 종로의 중앙이발관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들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관대까지 동원되었는데, 이들은 다름 아니라 영화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1) 이 날, 수백 명의 관중이 구경했던 것은 한국영화사 최초의 코미디영화로 기록된 <멍텅구리>의 촬영 현장이었다. 촬영 내용인즉, 머리를 깎고 있던 주인공 최멍텅이 짝사랑하는 기생 신옥매가 지나가는 모습을 거울로 보고는 옥매를 쫓아가겠다고 거울을 향해 돌진하다가 거울을 깨뜨려 이발관 주인과 다투는 장면으로, 말하자면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씬이었던 것이다. 영화 촬영 현장이란 예나 지금이나 신기한 구경거리겠지만, 엄동설한 한파에도 불구하고 이 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던 데는 몇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의 원작인 만화 「멍텅구리」 시리즈가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멍텅구리」 시리즈는 동양화가로 잘 알려진 심산 노수현이 그림을 그리고 그의 만화 스승이자 당시 조선일보 발행인 겸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었던 천리구(千里駒) 김동성이 기획을 맡았으며, 조선일보 편집고문이자 소설가였던 이상협과 조선일보 부사장이었던 안재홍이 스토리를 맡아 1924년 10월 13일부터 약 2년 7개월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멍텅구리」는 경성의 모던 보이인 주인공 최멍텅과 그의 친구 윤바람, 그리고 최멍텅이 짝사랑하는 기생 신옥매를 주인공으로 이들의 일상사를 다룬 만화였다.
 
▲영화 멍텅구리의 한 장면(한국영상자료원)

 
첫 시리즈인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시작으로 「멍텅구리 련애생활」, 「멍텅구리 자작자족」, 「멍텅구리 가뎡생활」, 「멍텅구리 세계일쥬」, 「멍텅구리 사회사업」, 「멍텅구리 학창생활」 등으로 이어지면서 약 500회에 이르는 연재 기간 동안 만화는 주인공들의 연애와 결혼, 사회생활과 여행 등 굵직한 인생의 계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아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신문학과로 유학을 다녀왔던 김동성이 당시 유행했던 미국 만화 「브링잉 업 파더(Bringing Up Father, 주인공 이름을 따 “매기와 지그스”로도 알려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며, 그 미국 만화를 번안하여 연재했던 일본 만화의 영향 역시 이 만화에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고도 하지만2) 무엇보다 근대화, 서구화 되어가고 있는 경성의 풍경과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멍텅구리」 시리즈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간신문에 연재된 최초의 성인만화이자 광범위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첫 만화작품으로 기록3)된 「멍텅구리」는 연재와 동시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듬해 《동아일보》 역시 비슷한 콘셉트의 네 컷 만화 「허풍선이 모험기담」의 연재를 시작했고, 그 밖의 신문이나 잡지들에서도 앞다투어 「멍텅구리」의 아류작들, 이를테면 「엉터리」나 「마리아의 반생」 등의 만화를 양산4)했다.
 

▲《조선일보》 1924년 10월
13일자에 실린 「멍텅구리 헛물켜기」 1화 “초대면”
이러한 만화의 인기는 신문의 지면을 넘어 3차원 공간으로도 확대되었다. 만화 「멍텅구리」를 원작으로 하는 코미디 연극 <멍텅구리>가 등장했던 것이다. 만화 연재를 시작한 지 2개월여가 흐른 1924년 12월 30일 용천군에서의 공연을 시발로 1925년 1월 신의주, 4월 공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연극 <멍텅구리>가 공연되기 시작한다. 연극은 물론, 관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5) 그러니, 만화 연재가 1년을 넘어간 시점이었던 1925년 12월, 만화와 연극을 먼저 접했던 독자들과 관객들이 원작 만화의 영화화라는 조선 대중문화계 초유의 사건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만화에서 연극으로, 다시 영화로 이어지는 텍스트의 전유는, 1920년대 조선에서도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 최멍텅 역을 맡은 배우 이원규, 신옥매 역을 맡은 김소진의 인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원규는 “조선 재래 신파 연극계에서 희극배우로 첫 손가락”6)에 꼽히던 배우로 “극장 상하가 떠 달아나도록 관중을 웃기던 희극왕”이자 “예풍으로서 당시 극계의 독보적인 존재”7)였다. 1926년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 이미 16년간 연기를 해 오고 있던 마흔 일곱 살의 이원규는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이 웃을 준비를 하는, “덥허놋코” 만원 입장객을 부르는 스타8)였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조선 최초의 여배우9)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김소진은 1917년 신파극과 창극을 혼합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등장했던 개량단에 의해 발탁된 기생 출신의 배우였다. 그 때까지 조선의 극계에서 여주인공은 여형배우(女形俳優, 여자역을 맡은 남자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창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생 김소진을 배우로 기용함으로써 개량단의 연극은 한층 더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있었을 터였다. 이후 신파극단에서 활약하던 김소진은  <쌍옥루>(1925)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하고, 같은 해 제작된 <멍텅구리>의 주인공을 맡게 된다. 바보 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대중극단의 스타 배우 이원규와 기생 출신의 배우 김소진을 각각 최멍텅과 신옥매라는, 배우의 페르소나에 걸맞는 배역으로 캐스팅한 <멍텅구리>는 단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25년 당시 경성의 대중들이 코미디영화를 사랑했다는 사실도 종로에 모인 수백 명의 인파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시 경성에 있었던 조선인 극장은 1912년에 개관한 우미관, 1918년 영화 상설관으로 전환한 단성사, 1922년 개관한 조선극장 세 곳이었다. 이 극장들은 거의 ‘양화관(洋畵館)’이라고 불릴 만큼 압도적인 비율로 외화를 상영했는데, 상영작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할리우드 영화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코미디영화는 조선에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던 무렵부터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1910년대 후반 이후 조선의 극장에서 상영과 재상영을 거듭하며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했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과 1920년대 초 맹렬한 기세로 채플린을 따라 잡은 버스터 키튼과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들, 그리고 1920년대 중반 조선 극장가의 대세였던 희활극(喜活劇, 코미디가 상당히 가미된 활극) <로빈후드>, <삼총사> 등에 조선의 관객들은 열광했다. 특히 찰리 채플린은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 받았다. 이들의 사랑은 제각기 다른 이유였겠으나,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근대’와 ‘자본주의’, ‘산업화’를 맞닥뜨린 떠돌이의 곤경과 좌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점 역시 1920년대 경성의 관객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을 터였다. 그리고 이러한 슬랩스틱 코미디의 문법과 웃음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조선 최초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해 갖는 기대와 애정도 남다른 것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다시, 1925년 12월 28일 종로의 중앙이발관으로 돌아가 보자. 원작인 만화 「멍텅구리」 애독자로서 갖는 영화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인기스타 이원규와 김소진에 대한 팬심,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라는 타이틀을 벗고 감독으로 데뷔하는 이필우에 대한 궁금증, 코미디 영화에 대한 깊은 호감 등등을 안고 촬영장을 기웃거리는 경성의 활동사진광들, 그리고 할리우드 무성 슬랩스틱 코미디와 대중극단의 연기방식에 만화적 상상력을 더하여 ‘조선’의 ‘코미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감독, 배우들과 스태프들. 1926년 1월 10일, 조선극장과 우미관에서 개봉될 조선 최초의 코미디영화 <멍텅구리>는 이처럼 제각기 다른 이유로 현장에 모인 수백 명의 활기 속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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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1925. 12. 30.
2) 디지털만화규장각,
http://2009.kcomics.net/Artist/view_info.asp?cdidx=3500&i=1
3) 디지털만화규장각, http://2009.kcomics.net/Artist/view_info.asp?cdidx=3500&i=1
4) 박인하, 「1920년대 <멍텅구리 헛물켜기>로 한국근대유머만화가 시작되다」, 박인하 블로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nterani&logNo=130116770775) 참고
5) “新義救濟劇 兩夜興行, 歡迎바든 멍텅구리劇”, 《조선일보》1925. 1. 18.
6) 《동아일보》 1926. 1. 4.
7) 안종화, 『신극사이야기』, 진문사, 1955.
8) 《동아일보》 1926. 1. 4.
9) 유민영, 『우리시대 연극운동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0,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