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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단상_ 두번째 - 눈의 전화

글 | 강신애_시인. 1961년생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불타는 기린』 등
 
그 해 겨울은 눈이 참 푸짐하게, 그리고 자주 내렸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체질 탓에 내게 겨울은 하얀 눈을 볼 수 있다는 시각적 즐거움과 코끝 쨍하게 정신이 번쩍 드는 상쾌함을 빼면 될수록 짧게 지나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니까 주변에 아무 피해 없이 한 보름 눈이 내려 온 세상이 백설로 뒤덮인 풍경을 실컷 만끽하다가 바로 화사한 봄으로 건너뛰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의 긴 맹추위 속에서는 삶의 활기와 감정조차 얼어붙는 듯하다.

나이를 먹어도 한결같은 눈에 얽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저녁을 먹은 후 동네 학교 운동장을 산책 겸 운동 삼아 돌곤 했는데 그곳은 초·중학교가 붙어 있기 때문인지 운동장 크기도 보통의 두 배였다. 그날따라 며칠 연이어 내려 쌓인 눈이 무릎높이로 소복하여 교문을 들어선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일었다.
 

천지 사방 흰 빛의 공간에 들어서자 백색 수도원에 입회한 듯 한순간에 온몸이 정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클로드 치아리(Claude ciari)의 <첫 발자욱>이란 감미로운 기타선율이 떠오르고 산책 내내 하얀 운동장을 맴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폭신한 숫눈을 골라 디디면 부드러운 상큼함이 발끝으로부터 머리칼까지 전달되어 온다. 내가 이렇게 백색 융단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까닭은 내 삶의 우중충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하로 영하로 곤두박질친 기온 때문에 강아지 한 마리 없는 텅 빈 운동장, 푹푹 다리가 빠져 옮겨 딛기 어려운 보행조차 즐겁다. 이렇게 한 삼십분 쯤 돌았을까?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이제 가야지, 하고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핸드폰이 없다.

어디서 빠진 거지? 집을 나서며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단단한 질감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없다. 눈 한복판과 갓길로 긴 타원을 그리며 찍힌 어지러운 발자국 틈새로 내가 디딘 발자국들을 헤아리며 다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없다. 유령의 옷자락도 스치지 않은 깨끗한 눈까지 눈(目)을 밝히고 눈을 헤치며 샅샅이 훑어도 없다!

공교롭게 내 핸드폰도 눈처럼 흰색이었고, 수신음을 진동으로 해놓은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까짓 게 가봤자 운동장 안이지’하던 마음이 차츰 절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산책이라는 자신과 더불어 걷는 최고의 시간마저도 핸드폰을 끼워 넣어야만 안심이 되는 나 자신의 불안증이 한심스러웠다.

낯이 있는 문방구 아저씨께 뛰어가 사정을 말하고 핸드폰을 빌려왔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으면 늘 하던 대로 내 전화기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열 번 스무 번, 잇달아 통화버튼을 눌러도 종적 없는 그 물건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종아리가 얼얼하도록 맴돌던 그날 그 너른 운동장의 백색은 거대한 알루미늄 바다처럼 무심하고도 망망(茫茫)한 것이었다. 마치 나 자신이 핸드폰 줄에 꼬리를 매고 광대무변한 우주 한 공간을 맴맴 도는 로봇 잠자리처럼 느껴졌다.

추위에 떨며 눈 속을 헤치고 다닌 다리도 아프고 남의 전화를 한 시간 가까이 들고 있는 것도 못할 짓이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전화를 걸고 있던 나는 교문 가까운 곳 소복한 눈두덩이 한 부분에서 흐릿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겹겹 솜 눈 이불에 여과되어 비쳐 나오는 그 신비한 푸른빛이 곧 액정화면의 깜박거림인 것을 직감한 나는 허둥지둥 눈 속을 파헤쳤다. 아니나 다를까, 차갑게 얼어가며 줄기차게 전화를 걸고 있던 나의 분신이 애타는 단말마인 듯 뿌옇게 흐려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니, 나의 헛된 맴돌기를 가련히 여긴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눈이 희박한 푸른빛을 쥐어짜 내게 전화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