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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인터뷰_ “여전히 ‘중립의 초례청’은 미래이다”

글 | 강형철_시인,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1955년생
시집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 『발효의 시학』 등

 
신동엽 시인

 
 
 
 
 
 
 
- 신동엽 시인과의 만남

 
신동엽_시인. 1930~1969년
시 「삼월(三月)」 「발」 「껍데기는 가라」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4월은 갈아 엎는 달」 「우리가 본 하늘」 등
 
 
 

 
▲     © 운영자
강형철
ㅣ 분단된 ‘조국’에서 숨쉬기가 불편하다면서 간암을 핑계로 69년도에 하늘나라로 이주하셨는데 그곳에서 숨쉬기는 편하신지 먼저 안부 겸해서 여쭙고 싶은데요. 아참, 저는 선생님 가신 뒤 80년대 중반부터 시를 쓰는 일로 생의 중심을 삼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강형철이라고 합니다. 부여에서 좀 내려오면 있는 군산의 촌놈이고요. 선생님 시가 좋아 시를 읽으면서 박사학위까지 했는데 여전히 공부가 미흡합니다.
 
 
신동엽 ㅣ 그렇군요. 알다시피 여기도 그다지 편하지는 않아요. 이곳에 오면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곳이 궁금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아마도 ‘조국’이 민주세상이 되고 통일을 이룰 때까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형철 ㅣ 선생님, 다소 놀라실 일부터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인병선 여사께서 수년 전부터 선생님과 이혼하시겠다며 이혼을 청구했는데 그곳 우편사정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들으시고도 연락을 안 하셨던 것인지 그것이 먼저 궁금한데요.
 
 
신동엽 ㅣ 나도 그 얘기를 들었어요. 벌써 십 여 년 전쯤부터 그런 ‘과격한 언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잘 알고 있죠. 그때는 내 고향 부여에 ‘신동엽 문학관’이 지어지면 그곳에 유품을 기증하고 이제 잊겠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부여에 문학관이 다 지어졌으니 나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된 것 같기는 합니다.
 
 
강형철 ㅣ 부여에 문학관이 지어진 것도 알고 계시는 군요. 그런데 아직 정식 개관을 못하고 있어요. 문학관만 지어놓고 그 운영이 부실하면 그거야말로 ‘껍데기 잔치’라는 것이 인 여사님 주장이에요. 그 주장을 잘 알고 있는 부여군 쪽 관계자들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는데 내년 4월엔 개관할 것 같습니다. 개관이 이루어지면 인 여사님께서 소장하신 선생님에 관한 모든 실질적인 물건들을 인도할 것이고 그쯤 되면 선생님과의 이혼 소송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 같은데요.
 
신동엽 ㅣ 실은 나도 할 말이 없어요. 처음 만난 것이 1953년도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이곳으로 이주한 69년부터 따져도 43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긋지긋 하겠지요. 내가 세 자식을 돈도 별로 없이 놔두고 왔는데 자식들을 키우는 일은 물론 내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그렇게 잘 보존하여 사람들에게 전한 것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게 생각해요.
 
 
 
강형철 ㅣ 감히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의 어떤 문인도 그런 심오한 내조를 받은 분이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게다가 인 여사님은 아버님이신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님의 전집도 냈고 또 아이들을 키우는 데 결정적 버팀목이었던 혜화동 로터리의 건물도 짚풀 문화연구재단을 만들어 세상에 돌려놓았습니다.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짚과 풀의 추억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짚풀박물관도 운영하고 계시죠. 70년대 이른바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사라지기 시작한 우리의 농경문화의 깊은 전통을 보존하고 현대적 의미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고 계시죠. 짚풀로 생활도구를 만드는 일은 최근 이곳의 중심문제 중의 하나인 치매노인들의 치유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시며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신동엽 ㅣ 참으로 근면하면서도 경우가 바른 사람입니다. 신혼 초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부여에 양장점을 차려 일을 하기도 했지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무력한 나에게 있어 실제적인 집안의 가장이었고 아직까지도 중심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혼 제의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협의 이혼은 안 될 겁니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그럴 의사가 없거든요. 다행히 이곳에는 우편사정이 좋지 않아 서류가 송달이 안 되기도 할 것이고……
 
강형철 ㅣ 문학관 개관과 더불어 신 선생님 흉상도 개막될 것이고 선생님의 모든 시 작품들을 새로이 간추려서 시전집이 나올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지금 한참 어지럽게 돌아가는 대통령 선거도 끝나서 지금 후보자로 거론되는 분들 중 한 분이 대통령이 될 텐데, 그 자리에 직접 와서 선생님의 시를 한편 낭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발표하셨던 「산문시」를 읽어도 되고 「산에도 분수를」이란 시도 좋고 「껍데기는 가라」를 읽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동엽 ㅣ 「산문시」는 북유럽의 사회모델을 생각하며 모든 권력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이바지하는 데 외엔 쓰이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이었는데 그 시를 기억하는군요. 「산에도 분수를」은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시인데, 실은 거기에 등장하는 산은 그냥 산이 아니지요. 일제 강점 이후 우리네 민중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헤맨 곳이 산이고 특히 6·25 이후 그곳은 무엇인가 바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묻힌 곳이기도 하지요. 보도연맹 사건이나 6·25 당시 서로 무차별적으로 죽고 죽인 곳도 산이었죠. 그런 사람들의 원한이나 비원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그 시를 쓰게 한 것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그런 것을 비교적 쉽게 말한 것인데, 거기서 말한 ‘중립’이 얼마나 피투성이의 개념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 한참 안타까웠죠.
 
강형철 ㅣ 중립이란 말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요. 우리사회가 반공 혹은 승공이라는 말 아래 경직되었을 때 중립이란 수상한 개념이 아니냐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그 개념은 정치학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변명도 했지요.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이즈음에 생각해보면 그 개념은 정치적 개념이 뚜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강만길 선생이 낸 손석춘 씨와의 대담집, 『20세기형 인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열어라』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는데요. 거기서 발견한 말 중 가장 빛나는 말이 ‘중립론’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한반도가 대륙세력권에 들어가게 되면 일본을 겨눌 칼이 되고, 해양세력권에 들어가면 대륙을 침략하는 다리’가 된다는 외교사학자들의 말을 한 후에 “우리 땅이 현재까지는 세 가지 길을 걸었어요. 고구려 시대같은 때를 제외하고는 대륙세력에 포함되었거나, 해양세력에 포함되었거나, 분단이 되었거나. 솔직히 말하면 이 세 가지밖에는 해본 일이 없어요. 그 세 가지 길을 피하자는 게 중립론이에요. 그러나 한 번도 된 일이 없어요”라고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 민족의 역사상 한 번도 구현될 수 없었던 개념이 중립이란 정치적 입장이었고 고도의 자주성과 고도의 자립성이 수반되는 개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외세도 동등한 이웃개념 외엔 수용치 않는 참으로 의젓하고 당당한 나라라는 개념인 것이지요.
 
신동엽 ㅣ 그렇지요. 배타적 개념으로서의 민족개념이 아니라 요즈음 생태학적 관점에서 서로에게 진정 도움이 되며 또한 의지가 되는 관계로서 자주적이면서도 자족적인 민족개념 그것의 상징적 표현이 중립이란 말이었죠. 나는 전주사범 때부터 당시의 진보적 사상인 아나키즘 마르크시즘 그런 것들을 익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를 해방시키면서도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이라는 생각에서 나를 피 끓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6·25 와중에 부여의 인민위원회 산하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얼마간 ‘산사람’이 된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죽음 직전의 상황을 몇 번 겪고 고향으로 복귀하면서 는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답을 부여 하늘의 별만큼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이념들이 만들어 내던 맑은 하늘 같은 답들이 몇 개 남았는데 그런 답의 하나가 「껍데기는 가라」의 중립사상입니다.
 

강형철 ㅣ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가 스탈린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당하고 소련에서 살던 우리 동포들이 중앙아시아로 내몰려 거기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들은 순수 이념세계에조차 민족이란 것이 작동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의 영역인데요, 그런 점들을 이미 체득하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동엽 ㅣ 그러니까 중립은 애매모호한 태도로서의 개념이 아니에요. 매섭고 당당하고 진정 아름답다라는 말이 말 그대로 형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중립이에요. 한마디로 ‘좋은 언어’입니다
 
 
강형철 ㅣ 그 말을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읽고 보니 ‘中立의 초례청’이란 말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이전까지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말에서 느껴지던 배타적인 공격의지 중심으로 이 시를 읽고 알맹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는데 다시 읽어보니 중립의 초례청이란 말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초례청이란 말은 두 남녀가 한 생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의식을 치르는 장소잖아요. 그 점을 생각해보니 이 시는 미래의 어떤 시점을 겨냥하며 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겐 한 번도 이룬 일이 없는 중립의 초례청이니까요. 그 자리에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나 일본을 하객으로 불러서 술이나 한 잔씩 하라고 하면서 배고플 테니 닭다리라도 뜯고 가라는 덕담을 건네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신동엽 ㅣ 그런 점에서도 정치지도자를 뽑는 일이 무척 중요한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강형철 ㅣ 실은 이번에 선생님 면담을 기획한 친구들이 가장 묻고 싶었던 말씀이 그것이었고 저도 이즈음에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무척 궁금했습니다.
 
 
신동엽 ㅣ 답은 알고 있지만 그걸 얘기하면 하늘나라에서도 주민증을 잃어요. 거기서 다시 쫓겨나면 어디 갈 데도 없고…… 그런데 정치 지도자를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떤 지도자를 뽑았다고 해도 국민들이 아니 민족 구성원들이 더 각성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아까 강만길 선생 이야기 하셨는데 나도 그 책을 좀 봤어요.
 
강형철 ㅣ 아니 그것을 어떻게 보나요?
 
신동엽 ㅣ 인터넷을 통해 왔다 갔다 하는 것 때문에 이곳도 시끄러워요. 그 소리가 요즘 하는 말로 장난이 아니거든요. 나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안다니까요.
 
강형철 ㅣ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안단 말씀이세요?
 
신동엽 ㅣ 우리 민족의 우수성, 현 시대는 문화영역의 창조성이야말로 세계를 열어가는 원동력의 한 표현 아닐까요.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김연아도 알고 있고 런던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메달 딴 숫자도 알아요.
 
강형철 ㅣ 헐!
 
신동엽 ㅣ 그게 놀랍다는 말이지요.
 
강형철 ㅣ 이제 할 말 없습니다.
 
신동엽 ㅣ 아무튼 그 책에서 강만길 선생이 민주주의를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 문화적 민주주의란 말로 구분해서 살피고 있는 것이 좋았죠. 또한 우리 민족이 분단된 과정을 국토의 분단, 국가의 분단, 민족의 분단이란 말로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분단이 심화되는 모습을 설명한 것도 인상 깊었고요.

 
 

 
강형철 ㅣ 민주주의란 말을 저는 너무 많이 들어서 한번 명료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는데 그렇게 구분하고 보니 명확해지는 것이 있어요. 민주주의의 반대되는 말을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요. 정치 지도자의 위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민주주의를 통합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자리인데 그 지도자를 실제적으로 끌고 가는 힘이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그저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지요. 또한 우리네 정치 상황이 그야말로 극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다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지요.

정치적 민주주의 못지않게 경제적 민주주의야말로 지금 세상의 화두잖아요. 생산력을 발전시키면서도 분배정의를 같이 이루어야한다는 말인데 이것을 1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의 희생이란 말로 요약하는 등 이것은 요즘 이 지구 전체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지요. 그것이 안 되면서 사회적 민주주의 개념은 휴지조각이 되는 것이죠. 만민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적인 말 속에, 남녀평등은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 속에 갇혀있는 것이겠죠. 거기에 더하여 사상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로 요약되는 문화적 민주주의는 또 어떤가요. 사실 신동엽 시인을 그토록 감금했던 것은 바로 그런 생각의 자유, 사상의 자유의 불구적 실현이 야기한 상처 아닌가요?
 
신동엽 ㅣ 그러고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우리에겐 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국토의 분단을 넘어 우리 국가와 민족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집중적으로 작동하면서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 언젠가는 합해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인데 그 문제는 사람들이 쉽게 잊지요. 강 시인도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북쪽에 대해서는 무슨 말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잖아요.
 
 

강형철 ㅣ 반쪽짜리 생각 반쪽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고 있지요. 또한 민주주의 세상과 민족의 통일 이 두 명제는 두 핵심과제 중 무엇이 먼저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에서부터 사람들의 생각이 갈리고 적대하는 일이 많았잖아요. 이제는 대개 이 두 개의 명제는 같이 생각해야하고 같이 이루어나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어가고 있지만 이중 한 가지만 떼어놓고 생각한다 해도 우리에겐 참으로 아득한 일입니다. 그 둘의 문제를 우리들 손으로 해결하는 데까지 도달하려면 너무 멀어 보입니다. 그쯤 될 때 우리의 땅에서 중립의 초례청이 세워지고 한 판 푸짐한 잔치가 벌어질 텐데요.
 
신동엽 ㅣ 그래서 여전히 중립의 초례청은 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젠 이런 말도 식상한 것이 됐는데 ‘거대담론’만 오간 것 같군요.
 
 
 
강형철 ㅣ 그렇지 않아도 몇 가지 진행되고 있는 일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내년 4월 즈음에 신동엽 문학관이 부여에서 개관할 예정이란 말씀은 드렸고요, 거기에 따르는 몇 가지 말씀도 드려야겠습니다. 인 선생님이 선생님의 모든 자료를 잘 보존해왔었지만 문학관을 개관하면서 그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자료들은 E-book으로 동시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 일은 선생님의 장남이신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가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컴퓨터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박물관의 시대이기도 한데요. 개관과 동시에 홈페이지도 열 예정으로 신동엽 학회의 정우영 시인을 비롯한 몇 몇의 일꾼들이 아주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를 통해서도 선생님의 문학과 관련한 많은 일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물론 부여의 주민들과도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동엽 ㅣ 훌륭한 선배 시인들도 많은데 제가 너무 큰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그 시점이 되어 가면 갈수록 걱정은 커져갑니다. (이건 말하기가 좀 쑥스러운 일인데) 이혼 소장이 날아오지 않을까 해서요.
 

 
강형철 ㅣ 그러면 할 수 없는 일 아닐까요. 이혼 하셔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까지 우편물 송달이 잘 안 될거라는 점입니다. 우리 로켓 실력이 아직 멀었거든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요즈음 인 여사님을 뵈니까 진정으로 이혼할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너무 ‘쫄지 말고’ 지켜봐 주시죠. 그러나저러나 이쯤 되면 선생님이 이곳 ‘조국’ 생각은 잊으시고 편하게 두루두루 여행이라도 다니셔야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신동엽 ㅣ 아무튼 불러주어 반가웠습니다. 할 얘기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반가운 김에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가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인병선 선생의 안부를 들으니 좋군요. 어쨌든 내 시를 많이 읽은 강 시인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쪼록 열심히 일하면서 시도 쓰고, 시를 쓰는 데 그치지 말고 ‘시를 살아서’ 훌륭한 세상 이루는 데 힘을 보태기 바랍니다.